38 관리자 2012-04-17 636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살아 있기만 해라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살아 있기만 해라 !

체념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을 속절없다고 합니다.
"인생은 속절없다"고 할 때 가장 어울리는 형용사입니다.
속절없는 인생이 때론 억장이 무너지는 사건을 만날 땐 죽음에 대한 유혹을 받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다"에서 억장이란 "억장의 성"의 준말로서 억 개의 벽돌로 만든 성을 말하는데 그 성이 무너질 때의 감정을 말합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감정은 남자에겐 평생에 이루어 놓은 사업을 화재나 사기로 한순간에 잃었을 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성이 사랑하는 자식이 사고로 죽었을 때 두고두고 이런 감정을 떨칠 수 없을 것입니다. 

시대마다, 각 사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의 고통은 내용에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 문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소문에 의해 당하는 손해, 가족과의 이별은 언제나 사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 이들이라면 전쟁 중에 있는 군인들처럼 긴장감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일은 전쟁만큼 어렵기도 합니다. 결혼 생활처럼 동거를 전제로 하여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전쟁만큼 어렵습니다. 

속절없는 인생을 사노라면 운명적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삶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일수록 삶 속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살아가는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크리스챤이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하여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피투성이가 되어 죽고자 했던 바벨론 포로 시대의 유대인과 다름없을 것입니다(겔16:6-14).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 그발 강가에 위치한 델아빕에 살다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강에서 종살이가 힘들어 죽으려 했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주었는데 "죽지말고 살아있어라 그래야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않겠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피투성이가 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살아있기만 하면 피투성이 된 몸을 물로 씻어서(세례) 피를 없이 하고(상처를 치료) 기름으로 바르고(성령을 부어 주심) 옷을 입혀 명예를 회복시켜 주신다하신 주님의 음성을 전해 주었습니다. 가죽신을 신겨 복음의 사명자로 세워 주시며 화려한 면류관을 씌워 주시는데 이 화려함이 이방인에게 알려질 그 때는 무너지지 않은 온전한 것으로 만들어 주신 답니다. 

삶은 주님의 은사이며 인생은 그 것을 맡은 청직이 일 뿐입니다. 인생의 실존은 고통이며 자연이나 타인과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할 군인 같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더 힘든 것은 자주 넘어지는 자신과의 싸움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배고픈 사자 같은 마귀와 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고난이 없었던 인생은 없으며 성공하려는 이에게는 받을 축복만큼 시련이 있었으나 그 시련도 인생을 만드신 하나님께선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십니다.

피투성이 되어도 살아있어야 하나님이 회복 시켜 축복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실 수 있습니다. 
사는 것은 살아야하는 사명입니다. 
기쁘게 살면 주님도 기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