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관리자 2012-04-17 408
말씀이 축복되려면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다" 라는 말은 기독교의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 교파 중에서 개신교가 천주교보다 말씀을 강조합니다.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고 말씀으로 기독교인은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때도 말씀으로 주시고, 치유와 기적을 주실 때도 말씀을 통하여 역사 하십니다.



말씀대로만 살면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성경을 통한 말씀은 진리이고 빛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헬라어에서 성경에 있는 말씀을 로고스라고, 가르침을 통한 말씀을 디다케, 어떤 방법이든지 영감처럼 개인에게 들려지는 말씀은 레마, 선포되는 말씀을 케리그마라고 표현됩니다. 레마를 로고스로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 중에 디다케를 너무 강조하면 설교를 사모하는 성도는 책망으로 들리므로 은혜받기가 어렵습니다. 로고스를 제외한 말씀들은 해석에 따라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로고스라는 성경을 통한 말씀은 완벽합니다.



말씀 중에는 해석이 필요 없이 이해되는 것이 있고, 말씀을 해석해서 창의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 도 있습니다. 말씀이 해석되어야 축복되는데 성경해석에는 전통적으로 2가지 해석 방법이 있어왔습니다. 성경적(biblical) 해석방법과 비유적(allegorical )해석 방법이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성경적 해석 방법이라는 문자적 해석이 실력이지만, 기도원에서는 비유적 해석 방법이 은혜됩니다. 



열왕기하5장에서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 7번 몸을 담그라 하는데 6번도 의미가 없습니다. 꼭 7번을 해야 문둥병을 고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3장에서 엘리사는 요아스왕에게 화살들 들어 땅을 치라하였는데 3번을 치자 왕에게 화를 내면서 "5-6번을 쳤드라면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하였을 것이다"라고 아쉬워했습니다. 요아스왕은 3번만 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선지자의 생각과 달랐던 것입니다. 비슷한 예화로 민수기 20장에서 반석을 명하여 물이 나게 하라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주셨는데 지팡이로 두 번을 치게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어 모세와 아론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6장에 웃사라고 하는 사람은 믿음이 너무 좋아서 저주를 받아 죽는데,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장면입니다.. 법궤를 운반하는 소들이 날 뛰니 법궤를 보호하기 위하여 손으로 법궤를 잡았는데 그 행위가 잘못이라고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고 쳐서 죽이시니 웃사는 궤 곁에서 죽습니다. 레위지파나 제사장 외에 법궤를 만지면 죽는다는 민수기4장15절때문이었지만 웃사의 가족들은 억울한 장면입니다. 법궤가 땅에 떨어져도 만지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누가복음5장에서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하시었는데 깊은 곳에 대한 비유적 해석을 붙인다면 말씀 그대로 깊은 단계에 들어가라는 뜻이 됩니다. 당시 요단강 물은 헬몬산의 찬물이 강 중심으로 흐르니 깊은 곳에는 고기가 없을 것이라는 상식같은 것은 버려야 합니다. 믿음생활의 처음에는 얕은 물가에 머물지 말고 깊은 단계에 이를 때에 역사가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는 베드로에게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시었습니다. 오른편이라는 말에도 비유의 해석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함께 한 종들에게는 주님 편에 서는 것 , 진리대로 하는 것, 전통을 따라 하는 것, 섬기는 곳의 리더를 편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신자는 깊은 단계까지 이를 때에 역사를 체험하지만 주의 종들은 리더를 따를 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같은 사람인 시몬에게 어떤 때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 했으며, 또 어떤 때는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신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명자는 깊은 단계의 은혜를 경험해보아야 하며, 오랫동안 주를 섬겨 온 이들은 오른 편(주님편)에 그물을 던질 때 역사를 체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