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관리자 2012-04-17 466
스룹바벨 성전과 비교되는 현재의 한얼산 기도원
이스라엘사 역사에는 3개의 성전이 있었는데 각 성전의 건축을 주도한 사람의 이름을 따라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 헤롯 성전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첫 성전은 솔로몬 왕이 7년을 걸쳐 완성한 화려한 성전입니다. 두 번째 성전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스룹바벨이 인도하여 완성한 스룹바벨 성전인데 그 규모는 3개의 성전 중 가장 작습니다. 세 번째는 헤롯 왕이 스룹바벨성전을 재건축한 헤롯 성전입니다. 현재는 그 헤롯 성전이 예수님의 예언(마24:2)처럼 로마에 의해 AD73년경 파괴되고 그 자리에 가증한 것이라는 이슬람 사원이 AD7세기에 세워져있습니다. 유대의 총독이었던 스룹바벨이 인도해 완성한 제2성전이 처음 건축 될 때 노인들은 과거의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여 초라함에 대성통곡 하였습니다..(에스라3:12) 그러나 느브갓네살왕에 의해 파괴된 솔로몬성전을 기억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은 스룹바벨성전이 세워지는 과정을 보며 기뻐서 춤추며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스룹바벨 성전 앞에서 기뻐하거나 아니면,슬퍼했다고 한 두 종류의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1970년대-80년대있었던 부흥집회와 여의도광장 집회를 기억하는 성도들과 故 이천석목사님이 인도한 부흥성회와 한얼산 기도원 산상 대성회를 보며 은혜를 받았던 성도들은 21세기 초의 교회 모습과 식어만 가는 부흥집회들을 보면서 스룹바벨 성전 앞에 있던 노인들처럼 눈물 날 정도로 아쉬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한 때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참석자가 많았던 한국교회의 부흥집회를 기억하는 성도라면 더더욱 안타까울 수 있습니다. 현재 외형으로 세계적인 규모가 되는 한국의 200대 교회라 할 찌라도 그 교회의 설립자 되시는 목사님들은 나이가 많아서 옛날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 못하며, 한편 후계자 결정을 어렵게 해도 현재의 교우들을 이끌 지도력이 충분치 못할 것입니다. 지구촌 환경도 문명의 발전으로 빈부의 격차가 양극화를 이루어 교회의 외형에 비해 성도의 수가 줄어들 뿐 아니라, 교회에 대한 세상의 기대치는 커져만 가서 성도와 교회문화에 대한 실망은 늘게 될 것입니다. 가정을 갖고 있는 성직자라면 가문을 자랑하기가 쉽지 않고, 성직자가 주거용으로 부동산과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검소하고 청빈한 삶으로 보여줄 카리스마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은 양적 성장 후에 오는 질적 성장의 기회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며, 미래도 과거도 중요치 않은 현재의 문제입니다. 현재의 대형교회라도 순수한 복음과 초대교회의 신앙을 유지하기 어려운 물질위주의 교회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성직자라도 신세대를 움직이는 영향력을 갖기 쉽지 않을 것이며 대형교회라도 세상에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룹바벨 성전의 기공식에서 기뻐 춤추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에게는 간절히 소망하던 성전이 있다는 감격에 참을 수 없었습니다. 어려운 한국 교회 역사에도 꾸준히 성장하며 세상을 이끌 새로운 주님의 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구촌은 큰 변화 속에 있어서 속도를 조절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전 현직 대통령이라도 과거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죄수복을 입기도 합니다. 경제계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이 해체되거나 총수들의 자살이나 교도소로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경제 환경입니다. 대형교회의 성도나 부모가 유명한 자녀일수록 스룹바벨성전 앞의 노인들처럼 비교되어 과거를 회상할 때 서러움이 큰 변화의 시대입니다. 앞으로의 한국 교회는 침체가 예상되어 유럽의 교회들처럼 노인들로 주류를 이루어도 텅 빈 교회들이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모태 신앙인들은 슬퍼하지만 한편으로는 성공하는 사역자들이 주님의 역사로 감사하며 기뻐 춤추는 장면도 있을 것입니다. 한얼산기도원을 은혜받는 장소로 찾으시는 성도들중 20년 이상 다니시는 분들은 옛날의 한얼산 기도원 부흥집회를 연상하시며 안타까워 하시었습니다. 故이천석목사님 추도식이 있을 때마다 설교자로 이천석 목사님을 잘아시는 원로 목사님을 모시면 현재의 한얼산를 과거의 모습과 비교하여 직원들을 책망하시거나 아쉬움에 눈물짓기도 하시었습니다. 밤 세워 소리내어 기도하는 성도수가 급격히 줄어듬과 교회건축을 위해 재산을 바치는 성도가 적어짐도 스룹바벨성전 앞에서 울던 성도와 같이 아쉬운 마음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찬양은사를 받으시어 곡조있는 기도인 찬양이 좋아서 산을 찾으시는 새로운 성도들은 세상 어떤 곳보다 감격하시며 자랑합니다. 때로는 추도식을 인도하시던 젊은 목사님들은 변해 가는 한얼산의 예배문화를 보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창업만큼 수성이 어렵습니다. 과거보다 몇 배 중요한 것이 현재입니다. 행복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만족의 개념입니다. 과거의 솔로몬 성전보다 규모가 작더라도 스룹바벨성전이 있어 은혜 받을 수 있다면 기쁜 일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