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관리자 2012-04-17 548
담대하면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사명의 크기는 소원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은사의 크기는 담대함에 비례하여 보여 집니다. 청소년이 미래의 계획이나 소원이 없다면 자신의 삶에 대한 사명감도 느끼지 못합니다. 사명에 따라서 은사가 임하기에 사람마다 은사의 종류와 크기가 다릅니다. 어떤 이는 사명에 대한 욕심은 강하나 은사(才能이나 素質)가 부족한 경우(예언하던 사울왕)가 있는가 하면, 사사기의 삼손처럼 은사는 뛰어난데 사명감이 없어 방황하는 삶을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명에 대한 소원은 선한 욕심, 비젼이라 부르는데 그런 욕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자기의 사명이 아닌 분야에 욕심을 갖는 다면 자신의 삶을 실패하게 하는 탐욕이 되고 맙니다. 은사는 나의 사명이 아닌 분야에서는 나타나지도 않지만, 잠시 은사가 보여 진다 하여도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은사와 사명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11:29)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사명을 알려면 소원이 필요하지만 은사를 얼마나 잘 사용할 수가 있을까를 판단을 하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담대함의 크기(카리스마)를 보면 됩니다.

 

사람마다 은사를 주시기로 주님께서 계획해 두셨는데 소심할 때는 이 은사들이 카리스마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의 은사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방언은사처럼 표현되어야 할 영적 은사도 주위를 의식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믿는 확신이 부족하면 방언이 입으로 발성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유은사나 예언은사의 경우도 소심하면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모든 은사가 표현되어 열매를 보이려면 담대함이 조건이 됩니다. 찬양은사(달란트)와 사람에게 표현되는 은사들도 담대하지 못하면 가사를 전달하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사가 강하다는 의미는 카리스마가 있다는 말인데, 즉 담대한 만큼 카리스마가 보여집니다. 물질과 관계되는 은사와 세상에서 사용되는 은사들은 담대한 사람이 먼저 받습니다. 즉 사람 앞에서 사용되는 은사와 돈을 만드는 은사는 담대한 사람에게 더 많이 임합니다. 아름다움도 은사(카리스마)인데 소심하면 사람의 시선을 끌 카리스마가 없는 여인이 됩니다.

 

사명을 깨달은 사람은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훈련이 필요한 봉사자와 역사를 할 수 있는 은사자(전문인 사역자와 프로)입니다. 아직 훈련과 섬김이 필요한 사명자에게는 봉사와 충성심이 그 사람의 그릇입니다. 그러나 섬김를 통해 은사자가 되면 그 때부터 담대함이 요구됩니다. 사명자가 남을 섬기거나 사명의 장소를 섬기면 확신을 통해 담대해지면서 은사도 강해지게 됩니다. 믿음이란 들음에서 난다고 ..(17:10)할 때 이 믿음은 헬라어에서는 확신에 가까운 것이며 히브리어에서는 담대하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이냐고? 스스로 묻는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모르거나 담대함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서 14장에서 갈렙은 담대하므로 헤브론을 은사로 달라고 했습니다. 담대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나 감동이라는 은혜를 체험할 때 은사가 임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양을 따라 은사(재능과 사명)도 보여 집니다. 은사를 담대하게 사용하는 사람에게서는 카리스마가 나타납니다. 소심하거나 마음이 약하면 자신도 속이고(나는 소질이 없나봐!) 타인에게도 사명 길을 가지 않는 자신을 변명하게 됩니다. 언어로 표현되는 은사들은 담대할 때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강하게 됩니다. 섬김이라는 방법으로 훈련받고 있는 봉사자가 충성심이 없을 때 쓸모없는 종이 되듯이, 은사를 사용해야 할 사명자가 소심하면 삶마져 실패한 인간이 됩니다.

 

찬양하며 홍해 바다로 뛰어들었던 미리암처럼, 담대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담대하면 마음에 평안이 임합니다. 믿음 안에서 담대한 이들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원하는 것마다 소유하게 됩니다. 담대함이란 무모한 행동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의 크기가 담대함입니다. 영적인 권세도 담대한 성도에게 임합니다. 그러므로 담대하면 영적(靈的)으로나 물질적으로 길이 열립니다. 2017. 8. 25.